음수에 음수를 곱하면 왜 양수가 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외우고 넘어가면 그만이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두 음수의 곱이 양수가 되는 것은 직관 이전에 "편의"와 "논리"로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프랑스 작가 스탕달(stendhal)이 하필 자서전에
10,000 프랑(franc) 빚에다가 500프랑 빚(debt)을 곱하면 5백만 프랑 재산이 된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되네
라고 한 번 고백했다가 음수 곱하기 음수를 이해못한 예제로 영원히 고통받고 있죠. 여기에 저도 동참해버린 것 같네요. 미안합니다, 스탕달. 미안하니까 스탕달을 위한 변명을 좀 해 보죠.
일단 음수와 음수를 곱해서 양수가 된다는 것은 굉장히 비직관적입니다. 아마 우리도 따로 배우지 않았더라면 받아들일 수 없는 개념이었을 거에요. 스탕달이 저 코멘트로 회자되는 이유는 고대 사람이 아니라 무려 19세기의 사람이고, 평범한 소설가가 아니라 19세기 프랑스 최고 작가이자 지식인층이었기 때문입니다. <적과 흑>이라는 소설을 쓴 작가죠. 저희 아이도 대수학은 몰라도 <적과 흑>은 알더군요.
혹시 이 분이 문과 성향이라 그럴까 하실 분도 있을 지 모르겠지만, 정작 대수학을 만든 알콰리즈미(대수학의 아버지이자 알고리즘의 어원이 된 인물) 조차도 계산하다가 음수 개념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건 버렸다고 합니다. 무리수(irrational number)도 다 받아들인 마당에 음수를 못 받아들이는 상황이었죠.
이렇듯 문/이과 통틀어 음수, 특히 음수의 곱셈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었습니다. 끝.
자, 여기까지 스탕달 변명을 해 드렸으니 빚에다가 빚을 곱해서 자산이 된다고 해석한 게 왜 틀렸는지 알아볼까요?
덧셈 뺄셈과는 다르게 일상생활의 개념을 곱셈과 나눗셈에 바로 적용하면 많은 경우에 어긋나 버립니다.
어떤 개념을 수로 옮길 때,
실제로 단위를 가지는 것(길이[m], 질량[kg], 시간[hour, min, sec], 등)과
단위 없이 존재하는 것(주로 비율, 가끔씩 횟수나 갯수)은
반드시 구분해서 써야 합니다.
1cm라는 길이를 2배하면, 단위를 가지는 것에 비율을 곱하여 2cm라는 결과를 얻습니다. 상식적으로 맞는 답이죠. 여기서 주목할 것은 길이에 비율을 곱했더니, 길이, 즉 원래 것과 같은 단위를 가진 것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가로 1cm이고 세로 2cm인 직사각형에서 1cm와 2cm를 곱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되나요? 이 경우에는 단위를 가진 것과 단위를 가진 것을 곱한 경우입니다. 직사각형의 넓이에 해당하는 2 cm2 제곱 센티미터)가 나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단위를 가진 것과 단위를 가진 것을 곱했더니 새로운 단위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즉 이전의 단위에서는 잴 수 없는 무언가가 답으로 나온 것이죠. 길이 단위로 넓이를 잴 수는 없으니까요.
이렇듯, 단위가 있는 것끼리 곱하거나 나누면 원래단위로는 측정할 수 없는 새로운 단위가 나옵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볼까요? 100km를 2시간 만에 가면 50km/h의 속도로 달린 것이 되지요. 거리 단위를 가지는 것을 시간단위를 가지는 것으로 나누었더니 새로운 단위의 속도가 나왔습니다. 속도는 줄 자(tape ruler)로도 잴 수 없고, 시계로 잴 수도 없지요.
다시 빚 이야기로 돌아와 볼까요. 빚은 어쨌거나 돈 단위를 씁니다. 스탕달의 코멘트에서는 프랑(franc)을 쓰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빚에다가 빚을 곱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빚도 아니고 자산도 아닌 해석할 수 없는 다른 무언가가 됩니다.
반면, 돈에다가 비율을 곱하는 것은 쉽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500프랑의 빚이 2배 불어나면 빚이 1000프랑 되는 것은
2 x 3 을 보통 어떻게 해석하던가요? 한국에서는
2를 세 번 더 한다
라고 종종 표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정말로 세 번 더하나요?
덧셈 기호는 두 개밖에 없는 걸요. 실제로 미국에서는 저것을 2에다 2를 두 번(twice) 더한다고 표현합니다. 사실 더 정확한 표현이지요. 원래 2가 있다고 했을 때 거기에다가 2를 두 번 더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곱셈 식에서는 3이라고 써 놓고 두 번 더한다고 말하면 헛갈리기 때문에, 주로
2가 세 개있는 걸 다 합한다. (sum of three 2s)
혹은 그냥 2 세 개 (three 2s)
라는 표현을 즐겨 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곱셈에 대한 모델을 세울 때에는 미국식보다 한국식 표현이 훨씬 낫습니다. 실제로 3번 더하고 있는 거에요. 단지 뭐에다가 세 번 더하는 지를 생략한 것이죠.
(0에다가) 2를 세 번 더한다
이제 모든 것이 맞아들어갑니다.
0에다가 더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에는 2 x 1 을 해석할 때 "그냥 1을 곱했으니까 똑같이 2", 혹은 "그냥 2가 한 개 있으니까 2"와 같은 방식으로 해석했습니다. 1을 곱하는 경우만 특별취급을 한 것이죠.
그런데 0에다가 더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2x1 또한 (0에다가) 2를 한 번 더한 것으로, 즉, 다른 곱셈에 대한 해석법과 같은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해석법을 계속 확장해 보죠.
음수를 더하거나 빼는 것으로도 자연스럽게 확장됩니다. 음수를 더하거나 빼는 것은 마이너스의 마이너스는 왜 플러스가 될까? 에서 이미 다루었습니다.
이제 결과를 음미해보면, 음수와 음수를 곱할 때 양수가 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위 내용은 음수가 섞여 있는 곱셈을 직관과 연결할 수 있는 모형을 만든 것이지 음수와 음수를 곱해서 양수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한 것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정수(integer)인 경우에만 적용되지요. 조금 머리를 써서 확장하면 음수가 포함된 분수(fraction)의 경우까지 확장해 낼 수 있지만, 음수가 들어간 무리수(irrational number) 영역까지 확장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럼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음수에 음수를 곱한 것이 양수가 된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증명 대상이 아니거든요. 편의를 위해서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둔 겁니다.
조금 덜 엄밀하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수학자들이 <음수까지 포함한 숫자, 덧셈, 곱셈>이 있을 때, 분배법칙(distributive property)이 성립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분배법칙]
대수학에서는 환(ring, 고리)이라고 하는데, 수학자들이 숫자와 덧셈, 뺄셈에 대해서 환(ring)을 만들고 싶어했죠. 그래서 음수까지 확장된 숫자들(정수, 유리수, 실수 등)에 대해서 분배법칙이 항상 성립하도록 곱셈을 정의하다보면, 알고 있는 연산, 예를 들어 2 x 2로부터, 모르는 연산 -2 x 2나 -2 x (-2)의 값이 무엇인지 계산해낼 수 있게 되고요, 결과는 앞에서 설명한 곱셈 모형과 같아집니다. 이 부분은 궁금하면 다른 글에서 한 번 정리해 볼게요.
실제로 우리가 배우는 숫자 및 연산은 거의 다(라고 쓰고 전부라고 읽음) 환(ring)입니다. 거기에다 곱셈이 교환법칙도 성립하고 0을 제외한 모든 수에는 역수도 있고 해서 계산할 때 쓰임새가 아주 좋은데요. 이렇게 환(ring)이면서 쓰임새 좋은 것들은 체(field)라고 부르고요. 우연찮게도 대학교갈때까지(심지어 대학교 다닐 때에도) 배우는 거의 모든 숫자 및 그에 대한 연산이 체(field)입니다. 그래서인지 따로 용어는 안 배우는 것 같습니다. 뭔가 다르거나 아닌 게 있어야 용어를 배울 텐데, 다 환(ring)이고 다 체(field)이니 따로 이름붙일 필요가 없었겠죠. 이런 용어들은 외울 필요는 없지만, 스쳐지나가듯이 눈에 익혀 둡시다.
대수학이라는 언급을 피하면서 대수학관련 개념을 이야기하기가 어렵네요.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 부르는 느낌입니다. 곱셈 모형을 설명하면서 "0에다가" 더하는 걸 생략하고 있다고 했지요. 사실 그것도 이전 글 마이너스의 마이너스는 왜 플러스가 될까? 에서 한 번 스치듯이 말하고 넘어간 "덧셈의 항등원"에다 더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수학이란 이름만 들어도 위축되는 사람을 종종 보았는데, 이름에서 오해를 하는 모양이더라고요. 대수학의 대는 대학교의 대와 다른 뜻입니다. 크다는 뜻이 아니라 대신한다는 뜻이거든요. 명사를 대신 지칭하는 게 대명사인 것 처럼 여러 숫자를 대신하는 대숫자(보통 문자로 쓰죠)를 가지고 숫자나 연산의 패턴이나 특징을 알아보는 게 대수학입니다. 그렇게 패턴 찾다보면 공식도 만들 수 있는 것이고요.
하늘의 해와 들판의 양 한 마리가 완전히 다른 것임에도 숫자 1로 추상화하는 게 대단한 도약이었듯이(다른 동물들은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숫자를 대숫자(문자)로 퉁치면서 패턴을 찾아나가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재미랍니다.
아무튼 대수학 관련 용어들은 눈에만 익혀두고, 이번 글에서는 소개한 곱셈 모형으로 음수가 포함된 곱셈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만 스스로를 납득시키면 되겠습니다. 끝.